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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sentence

자기생활의 리듬

지난 토요일자 신문에서 읽은 칼럼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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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해진 일정을 지키는 동안 사람은 ‘서로를 분리시키는 거대한 공간을 서둘러 지나갔다’고 작가 제발트(W. G. Sebald)는 소설 <아우스터리츠>에서 적는다. 말하자면 공간으로부터의 소외다. 그에게 “시간이란 인간의 모든 발명품 가운데 가장 인위적”이다. 그것은 앞으로 일정하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 속에서 움직이고, 정체되거나 함몰되면서 계속 변화하는 형태로 되돌아오는”, “우스꽝스럽고 기만적인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벽시계건 자명종이건 손목시계건, 그 어떤 시계도 갖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이 시간의 권위에 저항하고, ‘시간의 밖에서’ 살아가길 꿈꾼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규정되는 인간이 시간의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인간이란 죽는 존재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항구적인 것은 살아있는 생애의 앞과 뒤 -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가 아닌가? 그렇다면 생존이란 예외고 죽음이 정상이다. 

시간에 속박된 인간이 시간의 지속, 시간의 본질을 알기란 어렵다. 70년 살이가 어떻게 영원을 가늠할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허구적으로 또 상상적으로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술은 시간의 한계 속에서 그 밖을 상상적으로 염원하고 표현하는 활동이다. 이렇게 시간 밖의 가능성을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역설적으로 지금 순간의 유일무이한 경이를 자각할 수도 있다. 

시간의 밖을 생각하면서 나는 지구의 나이와 화석의 시간을 떠올린다. 인류의 문화사는 50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인류의 출현 자체가 ‘진화의 부수현상’이라고 말한 고생물학자도 있다.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자기 삶의 리듬을 잃지 않는 것’ 아닐까 여긴다. 표준화된 시간을 무시할 순 없지만 하루의 어떤 때는 표준화하지 않는 것, 그래서 자기만의 리듬에 따라 자기 생애를 만들어갈 때, 그 시간은 누군가에 의해 ‘살아지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는’ 시간이 된다. 부과된 시간의 공허한 집적이 아니라 실감 있는 생애의 뜻있는 축적이 된다. 새해라고 해서 묵은해와 다르진 않겠지만, 해가 바뀌면서 갖게 되는 생각이다.

 
[사유와 성찰] 자기생활의 리듬 -문광훈 (충북대 독문과) 


시간의 표준화가 부른 인간의 딜레마랄까.
영원히 시간에 속박되어 사는 인간의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생각하면 시간에 속박되어 있는한 모든 것이 유한하고 덧없는 것. 
자기 삶의 리듬을 잃지 않고  내 리듬에 따라 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란 지독한 진실을 알면서도 이를 내면화 하는  일은 쉽지 않다.

크로노스 보다 카이로스..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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