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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sentence

덕현 스님-그림자를 지우며

-길상사 덕현 스님의...  "그림자를 지우며" .. 



  승가는 위기를 맞고 있다.  세속의 현란한 물신풍조, 가치 혼란, 정보통신 기술의 방향없는 질주......  온갖 것들이 청정한 승단에 존폐의 위협을 가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세상의 정치발전 과정에서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않은 시스템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민주주의는 그 액면상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 성원들이 충분히 교육되고 정화되어 선의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소수 탐욕과 이기적 야망을 숨긴 정치꾼들의 다수 대중에 대한 기만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공동체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성공적으로 지켜져 온, 그러면서도 가장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불교의 승가공동체의 생명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물론 부처님 가르침의 진리성이다.  그 진리가 우리를 일깨워 나 없음을 깨닫게 하고 무욕의 삶을 살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귀의,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 결실로서 우리가 누리는 진실한 자유와 행복이  무소유와 무집착의 수행자들로 이루어진 승단을 2600여년이나 지켜온 것이다. 

  법이 있고 계율과 청규가 있고, 법을 먼저 닦고 이룬 스승들이 있으며, 소임과 직책의 수평과 수직관계가 가장 아름답게 짜여진 조직력이 있는 승가에 무엇이 부족하여 혹을 붙여 불구를 자초할 것인가?  종교공동체에 정치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순간 그 순수성은 흔들리고 오염되기 시작한다. 

  가는 사람 말이 구구하면 안 되겠지만 내가 떠나는 마당에 진심으로 우리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본분과 소임을 다하며 묵묵히 구도의 길을 가자는 것이다. 자리를 지키기에 안간힘 쓰기보다 흐름을 따라가며 자신의 일을 하면 된다.

  어떤 사람도 영원히 한 곳에 있을 수 없고 한 자리에 머물 수 없다.  그러나 차지한 사람이 바뀌고 모든 것이 변화 속에서 흘러가도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우리가 누구인가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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