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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새치

작은 명함지갑에 언젠가 뽑은 흰 머리가 하나 들어있다. 참 이상한 취미라 할 것이다. 별건 아니고, 가는 세월을 잊지 말자, 뭐 그런 의미로 언젠가 뽑으면서 꽂아뒀던 것이다. 어제던가, 누군가의 명함을 꺼내다 그만 사라져버렸다. 

늦은밤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하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언뜻 귀윗머리(? 귀밑머리와 반대방향이니까?)께 은색 머리칼이 보인다. 가차없이 뽑았다. 한 뼘쯤된다.  만날 세수를 하면서도 어째 몰랐을까. 갑자기, 이렇게 시간이, 세월이 가는거구나 싶어 여기저기 머리를 쓸어 넘기게 된다. 한참 넘기다보니 뒤통수 가까운 옆머리에 새끼손가락 길이의 새치가 삐쭉 솟아있다. 수잔 손탁의 은발이 멋지다 생각하지만, 이렇게 이도저도 아닌 새치들은.. 그냥 놔둘 수가 없다. 결국 족집게로 뽑고 말았다.
 
마지막 새치를 뽑은지 한 2년쯤 되지 않았을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논문쓰는 내내 흰머리가 늘었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막상 이렇게 확인하고 보니 기분이 묘하다.  결국 이렇게 세월은 나를 관통해 흘러가는구나 싶다. 뒤통수 어디쯤엔가도 흰머리는 자라고 있겠지

어린시절 엄마의 새치를 뽑아주려 하면, 엄마는 늘 흰머리가 나려는지 뒷머리가 가렵다하셨고, 족집게를 들고 엄마의 뒤통수를 헤쳐보면 가느다란 새치머리가 삐쭉 솟아있었다. 이따금 내 머리가 가려운건 스트레스성 피부염이 아니라 설마 엄마 말대로 새치가 나려 해서 일까? 

점심엔 홍대앞에 갔다왔다. 여의도의사당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오피스텔에서 홍대일대를 내려다봤다. 세상이 저렇게 한 손에잡힐 듯 작은데, 아직도 어찌 살아야할지 몰라 이렇게 살까, 저렇게 살까 늘 망설이기만 하는 인생. 늘 이도저도 아닌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 스스로에 대한 죄악이 아닐까.
그냥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지금 너의 생각은 그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 말해도 이제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내가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게 맞다. 그 이후의 문제는 모두 내가 감당해야할 일이고.
평생을 이렇게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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